많은 디자이너들이 매끈하고 세련된 여성들에게 어필할 때, 릭 오웬이 눈여겨보는 여자들은 따로 있었다. 패션에 빠삭한 그들의 눈에도 릭 오웬스 쇼는 으스스할 때가 많다. “우울한 것에 이제 질렸어요”라고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디자이너가 말했다. 사실 그는 최근 들어 기후 변화, 저항 등을 컬렉션에 표현해왔다. 그 우울함은 침낭을 동아줄로 마구 묶어놓은 듯한 실루엣(푸파 재킷과 포대기 형태), 그리고 맨투맨이나 티셔츠의 소매를 길게 쭉 잡아당겨 헤어 장식(왕관부터 베일까지 여러 이미지 덕분에 여왕부터 마녀가 떠올랐다)의 유머 감각으로 대체됐다. 물론 여전히 괴상하고 낯설었지만, 이전처럼 섬뜩하거나 괴기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침착한 흙색을 기본으로 한 일관된 색조,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지만 알고 보면 치밀하게 계산된 드레이프 앞에선 ‘아름답다’는 감정마저 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