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역사를 지닌 영국 왕실, 첨탑과 중세 기사, 셰익스피어와 할리퀸 로맨스까지. 이토록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자일
스 디컨 같은 디자이너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이번 쇼는 디컨이 학창 시절 루벤스 벽화를 보기 위해 자주 찾던 화이트 홀(튜더·스튜어트 왕가가 거주
했다) 연회장에서 열렸다. “역사적 요소를 사랑합니다.” 이번 시즌 자일스 컬렉션의 요점이자 핵심이었다. 역사에 대한 심도 깊은 탐구는 디컨을 엘리자
베스 여왕 시대로 이끌었다. 디컨 숙녀들은 벨과 벌룬 형태의 소매에 파라슈트 스커트나 튤 속치마를 겹겹이 입은 풍성한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해 무대
중앙의 커다란 금빛 메탈 나무(영국 전통 축제에서 볼 수 있는 장식) 주위를 돌았다. 그런가 하면 엘리자베스 1세의 전신 초상화로 프린트를 제작했는데,
레오타드만큼 팽팽한 보디수트와 얇은 드레스까지 다채로운 실루엣으로 표현됐다. 또 바로크 벽지를 연상시키는 꽃무늬와 태피스트리에서 비롯된 고급
엠브로이더리도 빼놓을 수 없는 장치. 게다가 거대한 볼륨은 디컨의 특기 중 하나. 그러나 이번 쇼의 백미는 마이크로 플리츠와 레이저 컷으로 완성한 피
날레 드레스. 목도리도마뱀처럼 보이는 대형 튜더 러플 드레스 차림의 카렌 엘슨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은 “엘리자베스 1세!”라며 탄성을 질렀다.